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정로 도끼 사건 (문단 편집) == 결과 == 이 사건으로 인해 이정재의 부하인 [[유지광]]은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명동파는 와해되었다. 하지만 명동파와 관련된 인물들도 법정에서 나름 가벼운 형벌을 받았다. 1심부터 검찰이 3년을 구형했지만 이화룡은 줄창 집행유예, 동대문을 배신하고 명동파에 가세했던 [[심종현|아오마스]]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으며 [[신상사]]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그런대로 관대한 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같은 이북 출신들의 도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911280020910301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11-28&officeId=00020&pageNo=3&printNo=11558&publishType=00010#|둘 다 나란히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석방 이후 이화룡은 조직 세계에서 손을 씻고 영화계에 투신하였는데 제법 괜찮은 영화들의 제작을 지원했다. 그리고 [[5.16 군사정변]] 이후 동대문파가 괴멸 당하며 무주공산이었던 서울 일대의 암흑가는 명동파의 일원으로 이화룡의 부하였던 신상사가 이들을 어느 정도 수습하면서 다시 접수했다. 아오마스는 신상사에게 구타당하여 개망신당해 조직 세계에서 은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